오늘 난 한 신문 기사에서는 우리가 그 동안 알고있던 태양계의 9 개 행성 중 하나인 명왕성이 국제천문연맹의 새로운 행성 기준에 따라 이제는 더 이상 행성으로서의 자격을 잃게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이제 사람들에 의해 명왕성은 일반 행성(planet)이 아닌 소행성(dwarf planet)
들 중의 하나로 불리게 되었다.
우주를 내다보는 사람의 사야가 넓혀져서 새로운 기준과 구분이 필요해 졌다고 한다. 결국 사람이 우주를 내다보는 인식만이 바뀌었을 뿐이다.
여기서 이어지는 공상은 계속된다.
우리는 저 밖의 광활한 미지의 공간을 우주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내 안의 무궁무진한 세포조직들 하나하나도 아직 탐험되고 밝혀지지 않은 우주를 닮은 세계가 존재한다면, 나와 우주는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연속된 공간이며, 그래서 나라는 존재의 한정된 인식과 구별은 공허한 것이지 않을까?
다만, 이 대자연의 한 구성원으로서 존재하는 나의 의미는 영원히 풀 수 없는 인식의 한계 밖에 있지 않겠는가?
이럴 때 흔히 회피하는 말은, 신만이 대답해 줄 수 있다라는 것.
어쩌면, 나라고 하는 존재가치의 부여도 공허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삶이란 떠도는 티끌 하나가 정처없이 돌고도는 우주 탐험의 연속이다.
갑자기 방향을 트는 생각의 고리.
그런데, 티끌을 떠돌게 하는 에너지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에너지란 소비되는 것이라기보단 이동하면서 전달되는 것이라고 하던데…
똥싸면서 뿜어낸 지극히 개인적인 오후의 단상은 천둥소리와 함께 비가 내리면서 잠시 쉰다.